‘전후 70년’이라는 논점
post date : 2015.08.06
<이번 달에 다룬 월간지>
≪정론≫ ≪세계≫ ≪중앙공론≫ ≪문예춘추≫ ≪Voice≫ (각 8월호)
◆ 2015년8월 ◆
1.‘전후 70년’이라는 논점
◆ ‘핵 없는 세상으로, 씨앗을 뿌리다 –피폭70년 기억의 계승과 공유를 위해’ 다우에 도미히사 ≪세계≫
◆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평화의 독”을 불식하라.’ 이시하라 신타로 ≪Voice≫
◆ ‘중국인으로서 중국에게 “관용”을 요구하는 <일본에 대한 새로운 사고> 새 논문’ 스기야먀 히로유키 ≪중앙공론≫
◆ ‘중일 화해없이 동아시아의 안녕은 없다. ―“대일관계의 새로운 사고”를 다시 논하다’ 마리청 ≪중앙공론≫
◆ ‘ <버마의 하프> 다시 한 번 ~전사자를 애도한다는 것’ 히라카와 스케히로 ≪정론≫
드디어 8월을 맞이하여 각 잡지들은 ‘전후 70년’을 크게 다루고 있다. 전후 70년은 피폭 70년의 해이기도 하다. ≪세계≫ 8월호에 게재된 나가사키시장 다우에 도미히사 (田上富久) 씨에 대한 인터뷰 ‘핵 없는 세상으로, 씨앗을 뿌리다 –피폭70년 기억의 계승과 공유를 위해’에서는 피폭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가운데 핵무기 폐지를 위한 활동의 현황을 소개하고 있다.
다우에 씨는 우선 올 4월에서 5월에 걸쳐 개최된 핵확산금지조약(NPT)재검토 회의에서 최종문서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점에 대해 ‘정말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최종문서안에 채택의 최종단계까지 논의가 되었던 ‘히로시마, 나가사키 방문’이라는 문장이 포함되지 않은 것 보다 ‘피폭을 당한 사람들 및 지역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그 경험을 직접 공유하는 것’을 ‘권장한다’라는 내용이 반영된 것에 대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향후의 발판으로 삼고 싶다.’고 평가했다.
피폭지 방문에 대해서는 2016년 주요 선진국 정상회의(서밋)를 주시하면서 각국 정상들에게 촉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핵무기에 대한 이해가 아직 촉진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으며 특히 핵무기 폐지에 이해와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피폭지를 방문하는 것은 ‘피폭의 실상을 국제사회가 공유하고 핵무기 폐지에 대한 공동 작업을 시작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강력하게 촉구해나갈 생각이다.
또한 국가 간과는 성질이 다른 자치단체 간의 ‘작은 외교’에도 국제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힘이 있다고 하면서 ‘나가사키나 히로시마는 핵무기를 보유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선택을 해서는 안 되는 절대악이라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지역입니다. 따라서 핵무기에 대해서 하나의 자치단체라는 틀을 넘어 다양한 제언과 대응활동을 해 갈 것이며, 정부가 반대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면 지금까지도 그래 왔듯이 확실히 항의의 태도를 제시할 것입니다. 이것이 피폭을 당한 지역의 사명입니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다우에 씨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피폭국이면서 동시에 ‘핵우산’에 의해 보호를 받아온 국가라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핵폐지 운동의 선두에 서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어프로치의 하나로서, 비핵무기지대(비핵우산)를 실현시켜 동북아시아 지역으로 확대시켜나가는 것이 가지고 있는 의의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다.
또한 NPT재검토 회의에서 연설을 했을 때 ‘원폭을 투하한 미국에 대하여 그 책임을 묻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제가 아는 한 대부분의 피폭자들은 어떻게 하면 핵무기를 없앨 수 있을까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를 위해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있다.’라고 답했다는 에피소드와 피폭자들의 마음을 확실히 이어받은 젊은 세대들이 피폭의 실상을 계속적으로 전하고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절대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기억의 공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전쟁에 대한 “억지력”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미래를 향해 피폭지의 사명을 다 해간다는 결의를 새로이 했다.
■ 핵을 둘러싼 또 하나의 논의
대표적인 우파 정치가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도쿄도 전 지사는 ≪Voice≫ 8월호에 게재된 인터뷰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평화의 독” 을 불식하라.’에서 일미안보의 중심축인 미국의 핵우산에 의한 억지력은 ‘전설과 같은 허구’라고 하면서 이를 전제로 해 온 전후 일본의 국방의 존재방식을 통렬히 비판했다.
이시하라 씨는 1967년에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 총리가 표명한 비핵 3원칙(핵무기는 만들지 않는다. 보유하지 않는다. 들여오지 않는다)에 대해 국가의 방침이라고는 하나 법제화도 되어 있지 않으며 ‘국방의 본질적인 요청에 비추어 보면 일시적인 편의상의 방침이었던 것이 그 후의 일본을 속박하는 거대한 관념이 되어 버렸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전후에 대하여 ‘전후 일본이 향유해 온 평화는 전세계적으로 미증유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를 심상치 않은 긴장에 노출시키는 사태에 직면하는 일 없이 “평화의 대가”를 의식하는 일도 없이 약 반세기를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역사상 아주 드문 경우이다.’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앞으로의 일본은 ‘…스스로의 머리와 발로 일어설 수 있는 국가’를 지향하기 위하여 ‘평화의 독’을 불식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 일본과 중국 전후의 화해
전후에 대해 일본의 시점으로만 논하는 것은 위험하다. ≪중앙공론≫ 8월호에서는 요미우리신문 편집위원인 스기야먀 히로유키(杉山祐之)씨가 ‘중국인으로서 중국에게 “관용”을 요구하는 <일본에 대한 새로운 사고> 새 논문’이라는 제목으로 <인민일보> 전 논설위원이며 중국을 대표하는 논객 마리청(馬立誠) 씨가 일중관계에 대하여 논한 새로운 논문을 해설하고 있다.
마리청 씨는 중국이 ‘반일’ 일색이었던 2002년에 ‘일본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제창하고 ‘역사에 지나치게 구애받지 않고 전후 일본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이성에 의거한 일중관계를 구축하자.’고 촉구한 인물이다. 그 이후 중국 국내에서 비판을 받으면서 언론활동을 계속하여 전후 70년인 올해 13년 만에 논문을 발표했다.
스기야마 씨는 마리청 씨의 논문에 대하여 ‘…주제는 “평화”와 “반성”, “관용”을 통한 일중 화해다.’라고 설명한다. 스기야마 씨에 따르면 올 여름 발표되는 ‘아베담화’에 대해 ‘마리청 씨는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에 사죄가 없다면 그것은 성의가 없다는 것이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계속 사죄 문제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앞으로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라고 한다. 스기야마 씨는 이러한 마리청 씨의 주장은 ‘역사문제를 “외교적 카드”로 삼고 일본에게 반성과 사죄를 계속 요구하면서 일본을 일방적으로 단죄해 온 기존의 일본에 대한 자세에 재고를 촉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해설했다. ‘…일중간의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중국에서 중국사람이 중국사람에 대하여 이렇게 명쾌하게 “용서”를 촉구한 예는 없었다. ’고 하면서 ‘ “관용” ―전후 70년에 즈음하여 중국 자신을 향한 이 한마디야말로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강조한다.
마리청 씨 자신도 ≪중앙공론≫에 ‘중일 화해없이 동아시아의 안녕은 없다. ―“대일관계의 새로운 사고”를 다시 논하다’를 기고하고 ‘중일 양국의 역사관계를 다룰 때 많은 중국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것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전쟁이다. 이러한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역사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두 개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하나는 전쟁의 역사이며 또 하나는 화해와 협력의 역사이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최근 양국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최근 중일 민간에서 쌍방향의 움직임이 있으며 이성, 관용, 상호이해라는 면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보다 앞장 서서 양국의 화해를 추진하는 기초적인 힘이 되고 있다.’ 라고 평가했다. 또한 올해 들어 양국 정상의 회담이 잇달아 열린 것을 언급하면서 전후 70년을 맞이하여 ①평화(무력에 의한 문제 해결의 배제) ②반성(제2차 세계대전의 가해국으로의 일본의 반성) ③관용의 원칙 하에 ‘정부와 민간이라는 두 경로에 의한 지속적인 노력을 통하여 양국의 화해가 서서히 실현되어 가기를 희망한다.’고 논하고 있다.
■ 일본문학에 있어서의 전후
문학작품을 통해 전후를 재조명하려 하는 논문도 있다. 동경대학 명예교수 히라카와 스케히로(平川祐弘) 씨는 ≪정론≫ 8월호에 기고한 ‘<버마의 하프> 다시 한 번 ~전사자를 애도한다는 것’ 에서 한 권의 책을 통해 전후를 풀어내고 있다. 독일 문학가이기도 했던 다케야마 미치오(竹山道雄)가1948년에 발표한 <버마의 하프>는 일본군 병사가 전후에도 전쟁터에 남아 승려가 되어 전쟁터에 방치되어 있는 무수한 일본군 병사들의 시체를 거두어 묻어주는 이야기이다. 다케야마 씨는 이 작품을 쓴 이유에 대해 반전의 논조가 주류를 이루었던 전후 일본에 있어서 ‘…세상에 전사자들의 명복을 비는 마음은 없었다. …의무를 지키느라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진혼을 바라는 것과 전쟁의 원인이나 책임의 해명과는 완전히 다른 것인데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경박한 풍조’가 이어졌기 때문에 ‘어떻게든 애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과거의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생명과 평화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전후 70년의 기념비적인 해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각각의 생각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페이지는 공익재단법인 포린 ・프레스센터가 독자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정부 및 기타 단체의 견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