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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70주년 / 일본은 종교와 어떻게 마주하는가

投稿日 : 2015年04月27日

<이번 달에 다룬 월간지>

≪외교≫ / ≪세계≫ ≪중앙공론≫ ≪문예춘추≫(각 5월호)

 

◆제1호 2015년 4월◆
제 2차 세계대전 종식 70주년과 일본의 끝나지 않는 전후(戰後)/
일본인은 종교와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1. 제 2차 세계대전 종식 70주년과 일본의 끝나지 않는 전후(戰後) 

原爆ドーム2015년은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주변국가들과 역사인식 문제로 알력을 빚고 있는 가운데 여름에 아베 신조 총리가 발표하는 ‘전후 70주년 담화’의 내용에 국내외의 주목이 집중되고 있어 각 월간지가 ‘전후 70주년’ 특집을 다루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국제관계 속에서의 역사인식 문제와 전쟁책임 문제가 아닌, 일본과 일본인에게 있어서의 70년을 되묻는 기획이 모여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과거의 세계대전과 그 전후에 대해 어떻게 결말을 지을 것인가, 지금도 여전히 번뇌하는 일본과 일본인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기사가 많았다.

 

≪문예춘추≫가 게재한 전 궁내성 시종장(侍從長) 와타나베 마코토 씨와 쇼와(昭和) 역사 연구가 호사카 마사야스 씨의 대담 ‘천황 황후 두 폐하 “옥쇄(玉砕)의 섬”에 대한
20년간의 기원’에서는 4월8, 9일 이틀 동안 이루어진 팔라우공화국에 대한 천황 황후 폐하의 위령 여행과 천황 폐하에게 있어서의 위령의 의미를 전 측근이 소개하고 있다.

 

팔라우공화국 펠렐리우섬은 격전을 치른 끝에 약1만 명의 일본군 수비대가 전멸한 지역이다. 천황 황후 폐하는 전후 반세기를 맞이했을 무렵부터 국내에서 위령의 여행을 시작하여 전후 60년인 2005년에는 사이판을 방문했다. 그 때 팔라우 방문을 희망했으나 교통・숙박편, 경비상의 문제 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번에는 숙박용으로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현지에 파견하는 등의 배려까지 하여 염원하던 일이 이루어졌다.

 

와타나베 씨는 ‘제가 계속 뵈어 왔지만 폐하의 임무 중에서도 세계대전 전몰자에 대한 위령이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폐하가 위령에 대해서 언제부터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가에 대해 1983년 8월의 기자회견을 들면서 ‘이러한 전쟁이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느낍니다. 그리고 많은 희생자와 그 유족분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네 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폐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와타나베 씨에 따르면 ‘네 가지란 종전기념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의 날, 그리고 오키나와전 종결의 날’이며 ‘…이윽고 헤이세이의 시대가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층 더 전쟁과 전몰자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마음이 절실해지신 것 같습니다.…’라고 폐하의 심정을 대변했다.

 

이러한 절실함의 이유에 대해 와타나베 씨와 호사카 씨는 폐하가 같은 세대에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전쟁 체험 세대라는 것을 들고 있다. 한편 와타나베 씨는 ‘…황태자님이나 아키시노노미야 친왕님이나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입장에서 앞으로 위령이라는 것을 어떠한 형태로 계승해 나갈 것인가, 이것은 다음 세대의 일본사람 전체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라고 하면서 과거의 전쟁에 대한 세대 간의 온도 차를 우려했다.

 

과거의 전쟁과 전후의 존재방식에 대한 온도 차는 세대 간뿐만 아니라 지역에 따라서도 현저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폐하가 위령의 날에 거론한 오키나와와 히로시마・나가사키이다. 오키나와 현(縣) 내에서는 미해병대 후텐마 기지를 같은 해병대 기지인 캠프 슈와브 내의 헤노코로 이전・통합하는 계획이 오랫동안 현안이 되고 있다. 그러나 반대운동이 격화. 2014년 11월의 오키나와 지사 선거에서 반대파인 오나가 다케시・전 나하시장이 추진파인 현직 지사 나카이마 히로카즈 씨를 큰 차이로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세계≫의 ‘오키나와는 아시아와 일본의 가교가 된다.’라는 글에서는 오나가 지사가
테라시마 지 츠로 일본종합연구소 이사장과 대담을 했다. 오나가 지사는 헤노코 이설 반대라는 현(縣) 내의 여 론은 단순한 기지문제가 아니라 27년간에 걸친 미군 시정권(施政権)으로부터의 본토 복귀, ‘일본에서의 오키나와 차별’ 등을 통해 조성된 오키나와 현민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문제라고 설명한다. 또한 ‘왜 헤노코 신기지 건설에 반대하는가, 그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단순히 반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미 양 정부가 오키나와의 바람직한 모습, 아시아와의 관계를 제대로 논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냐 라는 의미입니다.’라고 하면서 ‘오키나와 기지 문제의 해결은 일본이 평화를 구축해 나간다 라는 의사 표시가 되는 것이며, 오키나와라는 소프트 파워를 사용하여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라고 주장했다. 현재의 오키나와 문제의 근원을 일본 정부가 ‘오키나와의 전후(戦後)’를 끝내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는 데에서 찾고 있다.

≪세계≫에는 또 하나의 끝나지 않은 전후(戦後)의 지역인 히로시마의 전 시장 아키바 다다도시 씨의 핵 폐기 주장도 게재되어 있다(‘핵 없는 세상은 실현 가능하다’). 피폭을 당한 시의 시장으로서 핵 폐기 운동의 선두에 섰던 아키바 씨는 피폭자의 고령화와 ‘피폭자는 핵 억지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생각에 입각하여 ‘우리 세대에 비해 다음 세대들은 더욱더 큰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의 체험을 “핵 억지력” “전쟁 억지력”으로까지 승화시킨 피폭자나 다른 전쟁 체험자들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며, “억지력”이 없는 세상에서 평화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라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또한 일본의 안전보장정책의 방향 전환에 대해서도 ‘헌법 준수’라는 입장에서 비판하고 핵 폐기 운동 논리와의 불일치를 호소했다.

그러나 안전보장정책의 방향 전환은 일본의 전후에 남겨진 과제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교≫의 특별기획 ‘전후 70년 내게 있어서의 (2차 대전)전후사의 순간’에서는 전 주미대사 구리야마 다카카즈 씨가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순간을 들어 전후 일본을 지배했던 일국 평화주의의 파탄을 해설하고 있다. 구리야마 씨는 1990년 8월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1년 전에 외무차관에 취임, 포스트 냉전의 외교방침으로서 ‘대국의 티를 내지 않는 대국의 외교’를 내세웠다. ‘대국의 티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2차 대전 전의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과 결별’을 ‘대국의 외교’는 ‘…G7의 일원으로서 글로벌적인 국제질서를 구축하고 이를 지키는 책임을 수행해 나가는 것’을 의미했다고 한다. 이 외교방침은 국제문제에 대한 관여를 완고하게 기피하는 전후 일본의 일국 평화주의와는 분명히 선을 긋는 것이었으나 얼마 안 가 그 모순에 직면했다. 걸프만 전쟁에서 일본은 대국으로서 국제질서 회복에 대한 협력을 요구받았으나 자금 제공에만 머물러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은 것이다.

 

구리야마 씨는 정전 후 가이후 총리(당시)에게 다음과 같은 브리핑을 했다고 한다. ‘최근 7개월간의 일본의 행동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이미지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는 것을 명기해야 한다. ……일본은 헌법과 평화주의를 대외적으로 책임회피의 구실로 삼고 있다는 인상을 국제적으로, 특히 미국에 부여했다. 자위대를 파견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보다도 파견하지 않는 이유의 타당성에 의구심이 제기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미지 회복에는 긴 시간과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구리야마 씨는 올 4월 1일에 서거했기 때문에 이 기고가 마지막 글이 되었다. 기고문은 ‘……(당시는) 일국 평화주의의 높은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전후 70년인 지금이야말로 다시 한 번 이 벽에 도전하고 싶다.’라고 마무리 짓고 있다.

 

2.일본은 종교와 어떻게 마주하는가

11ea043155822cdd83cdfbafdec1538f_s시리아에서 IS(‘이슬람국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과격파 조직)에 의해 발생한 일본인 인질・살해사건에 이어, 3월 튀니지에서 일본인 투어 관광객 3명이 희생된 이슬람 과격파에 의한 박물관 습격사건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일본 국내에서는 이슬람권과 구미에서 심각해지고 있는 이슬람 과격파에 의한 테러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 식의 의식이 강했으나, 이제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도 테러 문제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 안 된다며 당혹스러워하는 언론이 많이 보인다. 그 배경에는 일신교, 더 나아가 신 절대주의와 이성 절대주의의 대립이라는 이슬람권과 서구가 중세 이래 근대화에 이르기까지 펼쳐온 사상투쟁을 일본이 경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두 사건이 발생된 이래 월간지에서는 종교를 되묻는 기획들이 잇따르고 있다.

 

 

≪중앙공론≫에서는 ‘방황하는 종교심’이라는 특집을 편성하여 일신교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일본의 종교의 현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국 약 8만 개의 신사를 포괄하는 종교법인 ‘신사본청(神社本庁)’ 총장인 다나카 츠네키요 씨는 ‘누구든
받아들이는 장소, 그것이 신사입니다.’라는 글에서 ‘산, 강, 바위 등 다양한 자연 속에서 신을 발견한다는 신앙에서 발생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숭배해야 하는 존재라고 일본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며 자연숭배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교의와 경전을 가지지 않는 신도(神道)의 존재방식을 설명했다. 또한 주로 일신교 쪽에서 일본인들은 종교의 절조가 없다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일본대지진 때 큰 피해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서로 도우며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서로의 마음을 배려해 주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이유가 신도에 있는 건 아닐까, 신도에는 일본인들의 행동 규범이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인식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라며 신도가 교의가 존재하는 종교와는 다른 형태로 사회의 기반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같은 특집기사에서는 일본을 대표하는 교의가 존재하는 종교인 불교에 대하여 ≪월간 주지(住持)≫ 편집장이면서 안락사(安楽寺) 주지승인 야자와 초도 씨가 ‘분단・고립된 일본의 주지승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란’이라는 글에서 계승자 부족 등 ‘가업’으로서의 사원 경영이 처해 있는 어려운 상황을 소개하면서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일신의 안녕에 불가결하며 예전부터 계속 공동체를 지탱해 온’ 절의 역할이 재인식되었다고 해설하고 있다.

 

한편 ≪외교≫에서는 ‘가치관에 대한 “순교” ―신(神) 중심주의 이슬람 VS 구미 민주주의’라는 특집을 편성하여 일련의 이슬람 과격파에 의한 테러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그 시점에는 이슬람 원리주의가 양립할 수 없는 존재로서 충돌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의 질서가 되고 있는 구미 민주주의로 이는 즉 일본의 존립기반이라는 절박함도 포함되어 있다.

 

≪외교≫의 편집장인 스즈키 요시카츠 씨는 ‘풍자가 참극을 낳는 시대’라는 글에서 1월에 발생한 잡지 ‘샤를리 엡도’ 습격사건을 다루면서 양쪽의 대립의 가장 첨예한 부분에서 그 구도를 그려내고 있다. 이 글에서 ‘문화는 인간의 정신세계의 소산이나 사고・감정・행동에 의해 구성되는 내적 구조체로서의 “문화적 틀” 안에 존재하며, 풍자는 정치・사회의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저널리즘적 표현의 한 형태이다.’라고 하면서 이 잡지의 기사를 근대사회의 본질에 관련짓고 있다. 또한 이 잡지의 이슬람교 관련의 풍자에서 엿보이는 다른 종교와의 더블 스탠더드(이중잣대), 차별감을 지적했다. 글로벌화에 있어서는 ‘문화적 틀’에 입각하여 타자의 존재를 인지하고 ‘감성과 합리성의 공유 기반을 오랜 시간을 들여 착실하게 확대시켜 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지 않을까.’라고 했다.

또한 일본에서 중동 이슬람 연구의 1인자인 동경대학 명예교수 야마우치 마사유키
씨는 이 사건에 대하여 ‘현대 세계의 위기는 어디에서 생겨나는가’라는 글에서 일본에서의 재일한국 조선계 주민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특정 민족, 국민, 인종에 대한 증오・혐오 시위)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야마우치 씨는 ‘앞으로 우려되는 것은 구미사회에서 확실히, 왜 항상 이슬람 공동체에 관한 현상 만은 면죄가 되는가. 왜 이슬람 쪽은 항상 단죄하는 입장에 서서 우리가 단죄를 받아야 하는가 라는 주장이 급물살을 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헤이트 스피치에 머무르지 않고 헤이트 크라임(증오・혐오에 의한 범죄)으로 번질 가능성이 큽니다.’라고 우려감을 표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사회의 복잡한 양상 속에서 일본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지금의 일본의 번영을 보증해 주고 있는 국제적 레짐(regime체제) 즉 자유주의 무역체제의 최대의 수혜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중동의 안정과 중동으로부터의 시레인(sea lane 해상교통로), 해양 안전보장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문제입니다.’라면서 일본이 이슬람권의 문제에 근대 세계질서의 입장에서 관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또한 같은 호의 ‘이슬람 과격파 “IS”의 표적이 된 일본 ―인질사건에서 일본이 배워야 하는 교훈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재이라크 대사관 공사, 외무성 중동아프리카국 참사관을 역임한 캐논글로벌 전략연구소 연구주간인 미야케 구니히코 씨는, 일본은 2001년의 단계에서 이슬람 과격파의 테러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IS의 전략 목적은 “성전(聖戰)의 지속”에 의한 “이슬람 국가의 수립”’이라고 하면서 ‘애시당초 이러한 상대와 “협상”이나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지는 극히 적은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라고 해설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베총리의 중동 방문이 빌미가 되었다는 국내 언론의 비난에 대하여 ‘일본 매스컴의 지적 한계가 드러난다.’고 신랄한 평가를 했다. 테러사건에 대해 주인도 대사, 주프랑스 대사를 역임한 일본전략포럼 회장대행 히라바야시 히로시 씨도 같은 호에서 ‘일본인은 테러에 굴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결의를’이라는 제언을 기고했다. 일본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 ①전후 일관적으로 실시해 온 이슬람권에 대한 평화적인 인도지원의 지속 ②서구의 국가가 아닌 국가로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긍정적 이미지의 유지 ③일본사회의 종교적 관용성의 어필 ④이슬람권에 대한 일본 입장의 직접적인 어필 ⑤국내 법제와 자위대의 현 상황의 상기(想起)를 들었다. 또한 기존의 안전신화는 통용되지 않으며 국가로서 해외에서의 일본인 보호체제에 대해 온갖 수단을 강구해 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페이지는 공익재단법인 포린 ・프레스센터가 독자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정부 및 기타 단체의 견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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